

Posted by: Eunkyung Kim
2025년 10월 10일
[프리즘] 겉보기 사회, 배터리화재에, 속도 탄다
필자의 주 연구주제는 이차전지(배터리)이다. 석/박사와 기업근무경험까지 하면 30여 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잘 하진 못하지만, 학생들과 재미있게 연구하려고 분투(?) 중이다. 근래 배터리 관련 뉴스들을 접하면서 이 칼럼에 쓰고 싶은 내용이 있어, 한가위 휴간인데도 펜을 든다. 먼저, 얼마 전 행안부 담당 공무원의 안타까운 소식까지 전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배터리 화재 사고가 그랬다. 직접적인 원인은 UPS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의 안전수칙 미준수라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묵은 불씨가 있었다. 불과 2년 전 사기업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온 나라의 서비스가 멈췄을 때,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전력 설비 이중화, 교체 절차 강화, 작업자 안전교육 강화 등 그 약속들은 서류들 속 문장으로만 남았고, 현장은 그대로 였다. 이번 화재는 그 (대책이 지켜지지 않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보고서의 빈칸은 채워졌지만, 안전의 빈틈은 그대로였고, 그 책임은 어김없이 가장 약한 사람에게 향했다. 사건 직후, 해당 업무의 공무원이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뿐만이 아니라, 시스템이 책임을 외면한 사회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배터리 관련 다른 뉴스 중에는 미국 조지아에서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배터리 공장의 불법 비자로 수백 명이 강제소환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단순한 법 위반으로 보이진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에,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이 건을 정치적 성과로 포장했다. 불법 체류자 수, 적발된 공장 수, 체포된 인원이 손과 발에 수갑을 찬 언론 영상이 그들의 '성과표'가 되었다. 어떤 기업은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인력을 철수했다는 후문도 있지만, 문제의 공장은 생산 일정을 지키고자 했던 눈치 없는 성실함의 이유로, 결국, 수백 명의 근로자가 연행되는 장면이 뉴스 화면을 채웠다. 트럼프의 무역 및 이민정책의 강력한 메시지였으나, 조지아주 서배너 지역 주민과 언론들은 글쎄~인 모양이다. 디테일은 부족한 보여주기식 정치 행정이다.
한국의 공공안전 사고와, 미국의 이민 단속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별개의 사건이지만, 근간은 하나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와 체면을 지키려는 사회. 우리의 행정은 서류를 채우고, 여야정치인은 정쟁을 계속한다. 모두가 바쁜 척하지만, 그 속의 신뢰와 책임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가? 요즘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의 연방정부 셧다운 속에서도 그는 정치를 쇼처럼 다룬다. 예산 협상의 실패로 대량 해고 위기의 공무원들과 서민들이 생계 위협을 받았지만, 그는 그 혼란을 자신의 무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에게는 정책의 본질보다 언론의 조명이 중요했고, 실질적 안정보다 보이는 강경함의 이미지가 더 큰 가치를 가졌다. 그 결과로 야기된 혼란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안보/경제로 번져 나간다. 앞으로 유심히 관찰해 볼 대목의 미국식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이 '보여주기'의 정치는 결코 다른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 대통령 부부가 해외 순방을 마친 직후, 배터리 화재 관련 비상대책회의를 긴급히 주재하고 곧이어 TV 녹화에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국민과의 소통은 중요하다. 하지만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의 리더)의 그 신속한 언론 노출은 과유불급일 수 있다. 카메라 앞의 메시지가 현장의 숙고보다 먼저 준비될 때, 리더십은 위기 대응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로 흐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모든 일에 즉각 반응하는 '똑부'스타일의 리더일까? 오히려 '똑게'처럼 생각은 깊지만, 조금은 게으른 리더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 들기보다, 그 원인을 곱씹고 방향을 천천히 잡을 줄 아는 지도자. 그런 리더십이야말로 위기를 미리 막지 않을까 한다.
이런 '겉보기'의 압박은 우리의 삶에도 스며 있다. 인스타그램의 한 장면, 완벽하게 편집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괜찮아 보이는 삶"을 연출한다. 하지만 진짜 내실은, 보이는 순간이 아니라 과정을 견디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질 텐데, 국가의 격도,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런 글을 쓰면서 5학년 필자도 속이 탄다 겉보기가 안 되어선지, 내실도 다지지 못해 선지, 둘 다든지.
일본 총리로 지명이 유력시되는 여성분의 발표 중에 "자신은 워라밸이란 단어는 버린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다"라는 대목에 걱정이 앞선다. 딴 나라 정치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자기 리더를 자기가 뽑지 못하는 일본 국민도 애처롭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